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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9일 일요일

가을이 오면


Pentax ME, fuji ASA200, Epson 2400 photo film scan

2003년 어느 가을날 한강변에서 찍은 코스모스

보편적 상식이 통하는 세상

지금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아시다시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이 정정 우경화되고 있으며 그 나머지 나라들은 이들 강대국이 가진 경제력 앞에 자세를 낮추고 있다.

경제력이 우선시 되는 자본주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들 나라들이 점점 우경화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일부 계층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역사를 고치는 황당한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이 민족의 역사적 발전 방향을 알고 있는 세력이 이 나라의 정권을 잡고 있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이를 이룩한 우리국민들의 높은 성숙도를 자랑할만하다.

우리나라 국민이야 말로 세상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성숙한 시민이다.

하지만 이것은 쉽게 성취한 것도 아니고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제 발걸음을 내 딧었을 뿐이다. 나라를 일제에 팔아먹고 그것도 모잘라 주권을 되찾은 이후에도 자신들의 이익과 변명을 위해 나라의 근본을 무너뜨린 세력들이 눈뜨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궤변, 뻔뻔함, 안하무인((眼下無人), 후안무치((厚顔無恥)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정말 논쟁이라도 가능하면 좋겠지만, 상식선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민족이란 말도 필요없다. 피해자와 역사앞에 정말 무엇이 옳고 그름을 모른단 말인가?

2004년 8월 21일 토요일

1980년대

가끔 그때 컴퓨터 잘하던 사람들은 지금 뭐하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유명했던 스태틱 소프트웨어 사장이나.. 그 외 놀라운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많은 사람들.. 제가 개인적으로 알던 형도 그 중에 한명이였죠. 컴퓨터 학습에 글을 기고하고 했던 형인데, 지금은 무슨일을 하는지..

스태틱 소프트웨어 사장은 인하대 전산과 학생이였는데.. 지금 말한면 벤쳐 기업을 만들어서 일본 MSX게임을 SPC-1000으로 컨버전할 수 있는 카드를 하나 만들었었죠.

저는 FC-100을 초등학교 5학년때, 컴퓨터반에서 처음 접해볼 수 있었어요.. 그당시 컴퓨터 반에는 오직 컴퓨터가 단 한대였어요. 아이들은 60며명..

컴퓨터반에서는 사실상 수업이 되지는 않았고 컴퓨터 보러가는 특별 활동이였죠. 그래도 그 중에서도 두곽을 나타내던 6학년 형이 있었지요. 그 형을 얼마전에 회사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

그당시 담임 선생님이 과학선생님이라 수업 끝나고 혼자 컴퓨터를 쓸 수 있었지요. 저한테는 무척 행운이였습니다. 그때는 BASIC을 알아야 컴퓨터와 대화(?)가 가능했죠. 게임도 직접 BASIC으로 입력해서 하곤 했었는데.. 심시저 기계어코드를 입력하기 했었죠...

그 당시 친구중 의언이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함께 컴퓨터를 공부하던 친구였죠. 그 친구는 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워서 꽤 잘하던 친구였어요... 고3때 잠깐 만났는데.. 경영학과를 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중학교에 진학한 후, 2학년때 무척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이 MSX2를 사주셨고 그 때 부터 컴퓨터와 시간 가는줄 모르는 시간을 보냈지요. 물론 성적으로 계속 내리막을 걸었지만.. ^^;

BASIC으로 게임도 만들고 컴퓨터 그래픽, 음악 여러 분야에 관심도 가졌었지요. 교회에서 컴퓨터 음악 발표회도 하고... BASIC으로 Play문과 FM카드를 이용해서 그 당시 일반 키보드 뺨치는 음악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제 생각만)

물론 진학을 위해 MSX2와 이별을 하고 나니 어느새 세상은 IBM-PC호환 기종이 주를 이루더군요.. 그래도 그 옛날 맺었던 컴퓨터와의 인연으로 지금도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당시를 잊을 수는 없지요..

아직도 MSX Emulator를 GP32에 설치해서 게임을 즐기곤 합니다.. :)

그래도 컴퓨터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8Bit시절 이야기가 나오지요. 감동적으로 한 게임부터 세운상가 이야기.. 잡지 이야기 등등..

모든것이 추억이 되버렸지만 오늘날 이자리까지 오게한 일등공신입니다.

:)

미쓰리(5) -졸지마! 미쓰리-


1999. 11/28 작

한참 DDR이 유행하던 시절에 그린 만화입니다.
playstation하고 장판을 하나 사서 집에서 열심히 DDR연습하던 때가 기억이 나네요. :)

마커로만 그려봤습니다.

2004년 8월 17일 화요일

틱닉한의 "화"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사
나의 점수 : ★★★★★

오래전 부터 틱낫한 스님이 쓴 책을 읽고 싶었는데, 드디어 "화"를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처럼 "화"를 어떻게 다스릴지 관한 내용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지지만, 본문을 읽어보니 좀 더 상세한 실천 방법이 나와있다. 특히 현대인들이 왜 화를 많이 내는지 소개하는 부분은 과희 충격적이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먹기 위해 동물을 키운다. 동물들은 아주 좁은 곳에 갇혀서 그들의 몸을 바치기 위해 사육된다. 때론 스트레스로 서로 물고 죽이기도 하고 인공적인 방식으로 죽을 때까지 우유와 계란을 생산한다. 그렇게 화가 쌓은 음식을 먹다보면 사람의 마음속에도 화의 씨가 생긴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기는 힘들다. 수많은 관계속에서 그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또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고민하다가 병들어 간다. 그리고 화를 낸다. 그 화는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그냥 공허한 외침이 된듯,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생기는 화는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씨를 키우지 않고 그대로 싹이 트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안의 화를 다스려 지금부터라도 가족 그리고 사람들과 화해하자.

2004년 8월 14일 토요일

[미쓰리4] -나두 곤란해-


컴퓨터 그래픽 사용을 하지 않고 스크린톤으로 작업했습니다.
미쓰리가 좀 귀여워졌죠?

1999년도 작
특별출연: 보노보노, 포로리, 너부리

2004년 8월 9일 월요일

미쓰리(3) -허락-


미쓰리 캐릭터가 좀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두고 그린 그림이라 때에 따라 그림이 확확 변하기도 합니다. 1999년도 작품

2004년 8월 7일 토요일

미쓰리(2) -나이트편-


미쓰리2편이다. 거의 Making Film수준이다. 원래는 만화만 공개해야 하는데, 원본 상태를 보니 좌우에 앞으로 나올 캐릭터들에 대한 스켓치가 있어서 그냥 원본 그대로 올려본다.

몇몇 등장인물은 예전 회사 사람들이다. ^^;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시도한 흔적도 보인다. 그 당시에는 Photoshop의 Layer기능을 몰랐는지 원본은 Layer가 하나다. :)

2004년 8월 6일 금요일

아이로봇



제1원칙 로봇은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 그리고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로봇은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사람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로봇은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다지 큰 기대를 안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재밌는 영화였다.
물론 이런 영화를 빼놓고 지나갈만한 나는 아니다.

AI이후로 간만에 보는 로봇 영화인데, AI는 결말의 비약이 좀 심했고 이 영화는 원작자 아이작 아시모프 박사의 명성처럼 좀 더 사실적이다. 게다가 현란한 특수효과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더 해주었다.

보면은 항상 지능로봇은 여성의 목소리와 이름으로 대변되고 있다. 그 예는 아주 많다. 레지던셜 이블 등등 (갑자기 생각이 안나네)

재밌는 설정은 비키의 반란을 잠재우는 역할이 인간보다는 또 다른 로봇에 맡겨진 부분이다. 그는 자신을 창조한 박사를 아버지 처럼 여기면서 자신의 동족이라 할 수 있는 비키를 파괴한다. 그리고 모든 로봇의 지도자와 같은 위치를 올라선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화가 단지 영화로 끝날까? 언제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돌아다니는 로봇을 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2004년 8월 4일 수요일

미쓰리(1)


1997년도 작품

만화에 대한 열정을 다시 살리고자 공개해본다.

예전에는 자랑스럽게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나 오랜 세월탓에 작품의 질도 떨어져보이고 계속 업데이트를 못해서 홈페이지 이사하면서 메뉴에서 빠져버렸다.

이제부터 하나씩 공개할 예정!

2004년 8월 1일 일요일

도올 그리고 혜강 최한기

독기학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나의 점수 : ★★★

난 서점에 책사는 것이 좋다. 인터넷 보다는 다소 비쌀지도 모르지만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이 책 저 책 눈길을 주면서 뒤적거리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웬지 운명적으로 손이 가게 되는 책이 있는데, "독기학설"도 그런 것중 하나다.

난 도올이 좋다. 그는 확실히 세상을 넓게 보고 역사의 흐름을 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 때론 거침없는 독설을 퍼붙기도 한다.

그가 최한기라는 조선말 학자에 관해 이야기한 방송을 보고 이 책을 우연히 얻게 되었다. 사실 많이 망설이기도 했다. 이런 인문서적이 나에게 별 도움이 될까?

책은 다소 어려웠다. 도올이 여러나라에서 폭 넓게 공부한 때문인지 그가 나열한 어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자어 뿐만 아니라 구라파의 말도 많이 있었다. 사회과학에서 널리 쓰는 말이라지만 나 같이 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큰 맥락은 파악할 수 있었다.

최한기, 그는 조선말 다산 정약용과 견줄만한 아니 그 이상의 높은 사상을 갖고 있는 철학자다. 그는 당대의 어느 누구의 학문과 어느 사상과도 단절된 채, 세상을 아우룰수 있는 통일 사상 체제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학문은 역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충분히 가르침을 주고 있다고 한다. 그는 양반이지만 주변부 머물면서 평생을 자신의 사상 체계를 확립해 나아갔다. 벼슬도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의 부질없음을 깨우치고 연구에 몰두했다.

"혜강사상연구의 핵심은 바로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의 문제며, 이것은 한 문명의 논리가 타 문명의 논리로 전환될 때 발생되는 창조적 상상력에 관한 문제다" - 본문중

그는 시대를 초월한 창조적인 인물이다. 기존 지배 체제를 벗어나 청나라로 부터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잘 소화하였다.

기존 체제를 벗어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금 많은 사람들은 기존 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새 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올의 말을 소개하겠다.

"우리의 역사는 이들의 믿음(최한기의 사상)을 배반한 채, 일제와 미제와 마제(맑스제국주의)의 한 세기를 굴러 다녔다. 19세기에 이들이 처절하게 체험한 단절이 21세기로 접어가는 오늘날 새로운 연속으로 다시 창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개벽의 믿음을 또 다시 배반한 채 일제와 미제와 마제의 쳇바퀴만 굴리고 앉아있는 어리석음만 남기게 될 것이다."